하루 한마디
나무 같은 사람
zzirong
2022. 11. 26. 13:03
나무 같은 사람
나무 같은 사람 만나면 나도 나무가 되어
그의 곁에 서고 싶다
그가 푸른 이파리로 흔들리면
나도 그의 이파리에 잠시 맺는
이슬이 되고 싶다
그 둥치 땅 위에 세우고
그 잎새 하늘에 피워 놓고도
제 모습 땅속에 감추고 있는
뿌리 같은 사람 만나면
그의 안 보이는 마음속에
놀 같은 방 한 칸 지어
그와 하룻밤 자고 싶다
햇빛 밝은 날 저자에 나가
비둘기처럼 어깨 여린 사람 만나면
수박색 속옷 한 벌 그에게 사주고
그의 버드나무 잎 같은 미소 한 번
바라보고 싶다
갓 사온 시금치 다듬어 놓고
거울 앞에서 머리 빗는 시금치 같은 사람
접으면 손수건만 하고 펼치면
저녁놀만 한 가슴 지닌 사람
그가 오늘 걸어온 길, 발에 맞는 편상화
늦은 밤에 혼자서 엽록색 잉크로 편지 쓰는 사람
그가 잠자리에 들 때 나는 혼자 불 켜진
방에 앉아
그의 치마 벗는 소리 듣고 싶다
- 이기철 -